사막 사람들 '투아레그'
Date 2022.12.12
사막 사람들 ‘투아레그’
사막에 사는 사람들은 오아시스 정착민들 외에도 유목민들이 있다. 물을 찾아서, 풀을 찾아서 옮겨 다니며 가축을 기르는 사람들이다. 건조한 돌밭에 세워 놓은 천막 아래 간소한 잠자리, 소박한 음식, 가늘고 마른 몸, 입고 있는 헐렁한 한 조각 천, 머리에 감고 얼굴 절반을 가린 터번, 햇볕에 타서 진한 피부에 주름진 얼굴이 그들을 묘사할 수 있는 단어들이다. 유목민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사람들은 ‘사막의 용맹한 밝은 피부 색 전사’ 투아레그족이다. 여기서 밝은 피부란 사하라 사막의 남부에 사는 흑인들이 아니라는 뜻이다. 사막을 남북으로 이어주는 유목민으로 19세기 프랑스인 지리학자에 의해 유럽에 널리 알려졌다. 유목 생활은 무한한 자유와 소박한 지혜의 상징이 되었고 유목민은 신비한 존재가 되었다. ‘투아레그’라는 이름도 유럽인이 붙인 것이다. 알제리 인구의 0.1%에 불과하지만 존재는 확실하게 부각되어 있다.
모래 색과 대비를 이루는 청색 터번을 두른 그들의 실루엣은 ‘사막의 제왕’이라고 불릴 만큼 당당하다. 다리를 두 번 접어야 바닥에 앉는 키 큰 낙타 위에 앉아 조용히 흔들리며 걷는 그들의 모습에는 보는 사람을 숙연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터번은 낙타, 대추야자와 함께 사막에 꼭 필요한 세 가지 물건 중 하나다. 성년이 되면 두르기 시작하는데, 눈만 남기고 얼굴 전체를 가린다. 다른 이슬람 교도들과 달리 여자들은 얼굴을 가리지 않는다. 터번은 햇빛과 모래바람을 피하기 위한 것이지만 평상시에도 거의 벗지 않는다. 오아시스 농장에서 재배하는 ‘인디고’로 청색 물을 들인 4~5미터짜리 긴 천이다. 오래 쓰고 있으면 이마와 코끝에 청색 물감이 든다. 이제는 유럽을 통해 수입한 천을 쓴다. 색깔도 꼭 청색이 아니고 흰색도 있다. 투아레그 사회는 모계 사회로 시조가 ‘틴 히난’이라는 여성 부족장이다. 아하가르 아발레사에는 시조의 무덤으로 알려진 유적이 있는데, 4∼5세기 것으로 추정되는 무덤에는 베르베르 문자 ‘티피나그’가 내부 벽과 비석에 새겨져 있다. 1968년 유골을 조사한 학술단은 시신이 남자라고 결론 내렸다. 무덤이 부족장의 것이 아니거나 부족장이 여성이 아니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전설은 실제 검증에서 무너지기도 한다.
투아레그는 자부심이 강하고 용맹한 부족으로 프랑스가 알제리를 무력으로 점령한 지 70년이 지난 1902년까지 프랑스 군대와 충돌하며 가장 마지막까지 저항했던 베르베르인 부족이다. 그렇지만 그들이 한 인물을 중심으로 잘 뭉치는 사람들인 것은 아니다. 여러 갈래 부족들이 연합체를 구성하고 연합체의 대표가 있지만, 대표로서 인정받는 특별한 권한을 부여하지 않는다. 평등주의자들이라는 측면에서 그들도 역시 베르베르인들이다. 그들이 모여 사는 지역은 유럽의 식민지배에서 독립하면서 여러 나라로 쪼개졌다. 알제리 외에도 리비아, 니제르, 말리 등 다섯 나라에 분산되어 같은 민족이지만 국적은 6개로 갈라져 있다. 흩어져 있는데다가 이동이 잦아 이들의 정확한 수를 파악하기 어렵다. 대략 250만 명으로 추산한다. 생활 수단은 횡단 교역 외에 연 강수량이 150㎜ 정도는 되는 스텝에서 목축을 하는 것이다. 양과 염소 그리고 낙타를 키운다. 소는 드물다. 풀을 많이 먹기 때문이다. 최근 이동 목축을 포기하고 정착하는 수가 늘어나고 있다. 빈곤, 교육 및 위생 시설의 부재가 있고, 정부의 통제도 있지만 가장 치명적인 것은 최근 기후변화로 가뭄이 잦아지면서 목초지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면서 아이들을 학교에 다니게 하고 있다. 아이들은 9개월 가까운 도시에 머물며 학교에 다니고 방학 때 집으로 돌아와 사막에서 지낸다. 알제리에서 가장 남쪽에 있는 도시 ‘타만라세트’가 투아레그족의 정착지다. 작은 마을이 확장되어 현재 30만 명이 사는 도시가 되었다. 수도 알제에서 1,900㎞가 넘게 떨어져 있다.
사막에 사는 사람들은 오아시스 정착민들 외에도 유목민들이 있다. 물을 찾아서, 풀을 찾아서 옮겨 다니며 가축을 기르는 사람들이다. 건조한 돌밭에 세워 놓은 천막 아래 간소한 잠자리, 소박한 음식, 가늘고 마른 몸, 입고 있는 헐렁한 한 조각 천, 머리에 감고 얼굴 절반을 가린 터번, 햇볕에 타서 진한 피부에 주름진 얼굴이 그들을 묘사할 수 있는 단어들이다. 유목민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사람들은 ‘사막의 용맹한 밝은 피부 색 전사’ 투아레그족이다. 여기서 밝은 피부란 사하라 사막의 남부에 사는 흑인들이 아니라는 뜻이다. 사막을 남북으로 이어주는 유목민으로 19세기 프랑스인 지리학자에 의해 유럽에 널리 알려졌다. 유목 생활은 무한한 자유와 소박한 지혜의 상징이 되었고 유목민은 신비한 존재가 되었다. ‘투아레그’라는 이름도 유럽인이 붙인 것이다. 알제리 인구의 0.1%에 불과하지만 존재는 확실하게 부각되어 있다.
모래 색과 대비를 이루는 청색 터번을 두른 그들의 실루엣은 ‘사막의 제왕’이라고 불릴 만큼 당당하다. 다리를 두 번 접어야 바닥에 앉는 키 큰 낙타 위에 앉아 조용히 흔들리며 걷는 그들의 모습에는 보는 사람을 숙연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터번은 낙타, 대추야자와 함께 사막에 꼭 필요한 세 가지 물건 중 하나다. 성년이 되면 두르기 시작하는데, 눈만 남기고 얼굴 전체를 가린다. 다른 이슬람 교도들과 달리 여자들은 얼굴을 가리지 않는다. 터번은 햇빛과 모래바람을 피하기 위한 것이지만 평상시에도 거의 벗지 않는다. 오아시스 농장에서 재배하는 ‘인디고’로 청색 물을 들인 4~5미터짜리 긴 천이다. 오래 쓰고 있으면 이마와 코끝에 청색 물감이 든다. 이제는 유럽을 통해 수입한 천을 쓴다. 색깔도 꼭 청색이 아니고 흰색도 있다. 투아레그 사회는 모계 사회로 시조가 ‘틴 히난’이라는 여성 부족장이다. 아하가르 아발레사에는 시조의 무덤으로 알려진 유적이 있는데, 4∼5세기 것으로 추정되는 무덤에는 베르베르 문자 ‘티피나그’가 내부 벽과 비석에 새겨져 있다. 1968년 유골을 조사한 학술단은 시신이 남자라고 결론 내렸다. 무덤이 부족장의 것이 아니거나 부족장이 여성이 아니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전설은 실제 검증에서 무너지기도 한다.
투아레그는 자부심이 강하고 용맹한 부족으로 프랑스가 알제리를 무력으로 점령한 지 70년이 지난 1902년까지 프랑스 군대와 충돌하며 가장 마지막까지 저항했던 베르베르인 부족이다. 그렇지만 그들이 한 인물을 중심으로 잘 뭉치는 사람들인 것은 아니다. 여러 갈래 부족들이 연합체를 구성하고 연합체의 대표가 있지만, 대표로서 인정받는 특별한 권한을 부여하지 않는다. 평등주의자들이라는 측면에서 그들도 역시 베르베르인들이다. 그들이 모여 사는 지역은 유럽의 식민지배에서 독립하면서 여러 나라로 쪼개졌다. 알제리 외에도 리비아, 니제르, 말리 등 다섯 나라에 분산되어 같은 민족이지만 국적은 6개로 갈라져 있다. 흩어져 있는데다가 이동이 잦아 이들의 정확한 수를 파악하기 어렵다. 대략 250만 명으로 추산한다. 생활 수단은 횡단 교역 외에 연 강수량이 150㎜ 정도는 되는 스텝에서 목축을 하는 것이다. 양과 염소 그리고 낙타를 키운다. 소는 드물다. 풀을 많이 먹기 때문이다. 최근 이동 목축을 포기하고 정착하는 수가 늘어나고 있다. 빈곤, 교육 및 위생 시설의 부재가 있고, 정부의 통제도 있지만 가장 치명적인 것은 최근 기후변화로 가뭄이 잦아지면서 목초지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면서 아이들을 학교에 다니게 하고 있다. 아이들은 9개월 가까운 도시에 머물며 학교에 다니고 방학 때 집으로 돌아와 사막에서 지낸다. 알제리에서 가장 남쪽에 있는 도시 ‘타만라세트’가 투아레그족의 정착지다. 작은 마을이 확장되어 현재 30만 명이 사는 도시가 되었다. 수도 알제에서 1,900㎞가 넘게 떨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