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화, 알제리의 언어
Date 2022.10.10
아랍인의 도래와 아랍인화
베르베르인의 땅이 현재처럼 아랍인의 땅이 되기 시작한 것은 이슬람 선교를 위한 아랍인의 침공과 그 이후 아랍인의 이주에 의한 것이다. 7세기 아랍인들이 처음으로 마그레브에 왔을 때는 전사들이었고 그 수가 많지 않았다. 그러나 11세기 2차로 이주한 아랍 베두인족 바누 힐랄 부족은 식솔을 거느린 거대 집단이었다. 이들은 한 번에 그치지 않고 11~15세기 사이 지속적으로 마그레브로 이주했다. 당시 마그레브 전체 인구를 약 100만 명 정도도 추정하고 있는데, 이주한 아랍인 인구는 최대 20만까지 추정하고 있으니 파급 효과를 짐작할 수 있다. 거대한 인간의 물결은 마치 밀려오는 바닷물처럼 평원을 적시며 전진했다. 높은 산에 살고 있었던 베르베르인들은 섬처럼 남아 서로 고립되었다. 베르베르인들의 집단 거주지로 꼽는 리비아와 튀니지의 제벨-네푸사, 텔 아틀라스의 카빌리와 오레스, 모로코의 리프 산맥과 하이 및 안티 아틀라스 등은 공통적으로 고도가 높은 산악지대다. 사막 오아시스들도 베두인족의 물결에도 불구하고 살아 남았는데, 사하라 사막의 이바디파 무슬림들과 투아레그족이다. 이들도 현재까지도 베르베르인 집단으로 남아 있다.
이슬람교도가 된 베르베르인들은 예언자 무함마드와 같은 부족이며 쿠란의 언어인 아랍어를 구사하는 아랍인들의 특권을 인정했다. 베르베르인들은 아랍인들과 함께 도시를 건설하고 왕국을 창건하면서 ‘다르 알 이슬람-이슬람의 집’ 속으로 편입되었고, 이슬람은 기독교와 같은 다른 유일신교들을 밀어내며 굳건하게 정착해 마그레브 정체성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일부 베르베르인 빠르게 적응했다. 가장 수가 많고 넓게 퍼져 살았던 베르베르 유목민 제나타 부족은 자신들과 생활양식이 비슷한 아랍인들에 쉽게 동화되어 아랍인들이 지브롤터를 건너 스페인을 침공할 때 주력부대가 되었다. 일부 베르베르인들은 더 적극적이었다. 쿠란의 언어인 아랍어를 익히고 아랍인과 교류하며 스스로 아랍인이 되었다. 원주민이 외부에서 도래한 사람들에게 자발적으로 동화한 것이다. “알제리인들은 아랍화된 베르베르인들이다.” 알제리 학자의 단언은 알제리만이 아니라 마그레브 전체에 적용된다. 마그레브 3국 가운데서 지리적으로 가장 동쪽에 있는 입구에 해당하는 튀니지가 외부의 영향을 제일 강하게 받았다. 피신할 수 있는 산지가 거의 없기 때문에 로마 시대 로마화가 빠르게 이루어졌듯이 아랍화도 가장 철저하게 이루어졌다. 반면 가장 서쪽에 있었던 모로코는 아랍화의 영향이 가장 약해서 베르베르인 인구가 가장 많이 남게 되었다.
역사에 비추어 베르베르인과 아랍인을 이분법적 대립 구도로 보는 관점은 프랑스 식민 정부가 구사했던 분열 정책에서 생긴 왜곡되고 과장된 시각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들은 그렇게까지 분열하고 대립하지 않았다. 베르베르인들의 아랍화가 7세기부터 현재까지도 진행중이라는 시각 또한 적절하지 않다. 베르베르인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간직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집단 주거지를 중심으로 공동체의 전통과 풍습을 이어가고 있고 자신들의 고유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다양한 문화 운동을 전개하면서 정체성을 지켜가고 있다.
아랍어, 베르베르어, 프랑스어
알제리의 국가 공식 언어는 아랍어와 베르베르어다. 이중언어 국가다. 아랍어가 모어인 인구가 80%이고 베르베르어 인구가 나머지 20%인데, 베르베르인들 대부분이 아랍어를 동시에 구사할 수 있으므로 아랍어로 통일되어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다만 두 언어가 서로 다른 양상으로 분화되어 있고 식민지배의 유산인 프랑스어도 사회 전반에서 폭넓게 사용되고 있어 언어적 측면에서 매우 복잡하다.
아랍어는 두 언어 체계로 분화되어 있다. 7세기 이슬람과 함께 도입된 후 지역의 사회 문화적 맥락 속에서 발달해 온 방언 아랍어가 있고, 19세기 초부터 이집트, 시리아 등 동부 아랍어권에서 정립되어 온 현대 표준 아랍어가 있다. 두 아랍어는 어휘, 발음, 문법 등 측면에서 서로 다르며 활용의 영역도 다르다. ‘다리자’라고 부르는 방언 아랍어는 일상 생활의 주 소통 수단이다. TV, 라디오 등 일부 미디어도 포함된다. 표준 아랍어는 학교 교육의 언어이고 아랍어 국가들과의 국제적 소통의 언어이며 인문 사회 과학의 언어다. 두 아랍어를 병행하고 있는 다소 혼란스러운 상황에 대해 두 가지 견해가 대립한다. 일각에서는 방언 아랍어를 억제하고 표준 아랍어로 이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편에서는 일상 생활과 동떨어진 표준 아랍어보다는 방언 아랍어를 공식 영역에 더 적극적으로 진입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떤 주장이 실제 언어 생활에서 더 높은 호응을 받을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다만 광고 잡지 라디오 등 대중 매체에서 방언 아랍어의 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추세라는 점만 주목할 수 있다.
베르베르어는 아랍어화가 시작되기 이전 알제리를 비롯한 마그레브 지역에 살았던 베르베르인들의 언어다. 아랍어에 의해 잠식되어 곳곳에 흩어져 있는 여러 지방들에 남아 있다. 2003년 국가 공식 언어로 인정되었고 2016년 헌법 개정을 통해 정식 공용어가 되었다. TV와 라디오 방송국들이 개설되어 전파를 타고 있다. 그러나 공식 언어로 제대로 기능하려면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남아 있다. 집단 주거지들에 따라 여러 방언들로 나뉘어 있고 집단간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진다고 보기 어렵다. 표준화 작업이 필요하다. 문자화의 문제도 있다. 소극적으로 사용되어 왔던 옛 문자를 복원해 비교적 최근 개발한 베르베르어 문자는 거리나 건물의 안내판 정도에 그칠 것이 아니라 지적 예술적 생산물이 따라야 하고 교육을 통해 전승 되어야 비로소 공식 문자 언어의 위상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카빌리 지방을 위시한 베르베르인 집단들이 정체성의 핵심인 언어를 포기하지 않고 다각적으로 노력하고 있어 그 추이는 두고 보아야 한다.
국가 공식어 지정과는 별개로 프랑스어도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프랑스어로 교육 받은 세대가 아직 활동 중이며, 경제 문화 학문 분야 등에서 프랑스와 긴밀한 교류, 프랑스에 이주해 있는 최대 600만 명으로 추정하는 알제리 출신 디아스포라의 존재, 위성 안테나를 통한 프랑스 TV 시청 등이 프랑스어를 유지하는 요인들이다. 현대 과학 기술이나 학문 이론 도입 등도 주로 프랑스어로 이루어져 대학 이공 계열에서는 프랑스어로 교육한다. 개인 편차가 크지만 프랑스어를 구사 할 수 있는 인구가 많아 알제리는 프랑스 다음으로 프랑스어 인구가 많은 국가다. 그러나 외국어로 배우고 있는 프랑스어의 활용 가치가 영어에 비해 크게 낮아지면서 젊은 인터넷 세대가 외국어로 영어를 선택하는 비율이 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