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ITUTE FOR EURO-AFRICAN STUDIES

학술활동

김정숙 교수의 알제리 알아보기

사하라 횡단

Date 2022.11.21

사하라 횡단
사하라 횡단은 기원전에 시작된 역사가 긴 무역 루트다. 7세기 아랍인들이 진출하면서 활발해졌다. 남북 양편에서 생산되는 물건이 전혀 달라 거래할 가치가 있었다. 북부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는 물건은 말, 대추야자, 철, 구리 그리고 노천 염전의 소금들이었고, 사하라 남부에서 올라오는 것은 서아프리카 금광에서 나오는 금이었다. 서아프리카는 당시 세계 최대 황금의 산지로 일하는 사람의 수가 수만 명이었다. 베르베르인과 이집트인이 금값을 정하고 카라반을 조직해 북쪽 지중해로 운반하면 이탈리아인이 유럽 각지로 조달했다. 금 거래에서 거둬드리는 세금으로 서아프리카에는 가나, 송하이 등의 왕국이 성립했다. 거래 품목에는 흑인들도 있었다. 인신매매가 성행했다. 팔린 사람들은 사막을 건너 북부로 끌려가 다시 매매되어 각지로 흩어졌다. 이러한 역사가 있어 일부 유럽인들은 흑인을 노예로 사고 팔고 부렸던 것은 자신들이 시작한 일이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부끄러운 역사를 정당화하는 데는 여러 방식이 있다.
사하라 횡단 무역 루트는 세 루트가 있었다. 서쪽 모리타니에서 모로코를 잇는 여정이 가장 짧았다. 사하라를 건너서 모로코 이슬람교도들이 개척한 오아시스 도시 시질마사에 도착하는 것이다. 거기서 알제리의 틀렘센과 타헤르트 그리고 튀니지를 거쳐 해안 길로 이집트와 중동으로 가는 것이 첫 번째 경로였다. 아랍어를 쓰는 무어인들이 이용했다. 다른 두 루트는 말리-알제리, 니제르-리비아를 잇는 경로로 모두 마그레브가 중간 기착지였다. 무역 루트는 이슬람 전파 경로이기도 했다. 다른 무슬림은 노예로 삼을 수 없다는 이슬람의 계율이 있어 개종은 노예가 되지 않을 수 있는 한 방법이었다. 이슬람은 대단히 실용주의적인 종교다. 인간에게는 죽은 후 천국에 간다는 약속 말고도 현세에 해줄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2달 간 낙타를 데리고 걷는 사하라 횡단 교역은 16세기까지 번창했다. 유럽인들이 아프리카 대륙을 돌아 동양으로 가는 교역로를 개척하면서 쇠퇴했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과 마젤란의 항로 개척은 우리가 알고 있던 것보다 파장이 훨씬 큰 사건이었다. 19세기 유럽은 사하라를 점령하고 경계선을 그어 통제했다. 19세기 말 프랑스는 사하라 횡단 철도 건설을 계획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포기했다. 이제는 자동차로 사하라 사막을 횡단한다. 지중해 항구 알제에서 니제를 지나 니제리아의 라고스를 잇는 횡단 도로 4,500㎞가 건설되어 있다. 서울~부산 간 고속도로의 약 14배되는 먼 거리지만 연료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알제리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원화로 300원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