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장하고 너그러운 지중해 아프리카 국가 알제리
웅장하고 너그러운 지중해 아프리카 국가 알제리
지중해 햇살을 반사하는 흰 색 건물이 경사면 카스바를 채우고 있는 알제(Alger), 자유로움과 가벼움이 공기 속에 떠도는 오랑(Oran), 깎아지른 절벽 위에 있는 메디나에 가려면 허공에 높이 떠 있는 다리를 건너야 하는 크산티나(Constantine), 깊은 계곡과 높이 솟은 산들 끝없이 계속되는 산맥 아틀라스(Atlas), 달려도 달려도 여전히 멀리 보이는 산의 실루엣과 황토색 고원 지대 오-플라토(Hauts-Plateaux), 드문드문 작은 도시들이 불쑥 나타나는 넓은 녹색 평원 미티자(Mitidja), 조용히 침묵하고 있는 망망한 모래 바다 사하라(Sahara), 야자대추 그늘 아래 따뜻한 박하 차를 마실 수 있는 오아시스 음자브(M’zab), 풀도 나지 않고 새도 날지 않는 외로움을 거만하게 견디고 있는 산맥 아하가르(Ahaggar), 바람이 조각해 놓은 기괴한 암석들이 끝없이 도열해 있는 타실리 은아제르(Tassili N’Ajjer)… 산은 높고 땅은 넓은 나라 알제리의 풍경들이다.
알제리는 외국인에게 친절한 나라가 아니다. 비자 없이 들어가 관광할 수 있는 이웃 두 나라 모로코와 튀니지와 달리 알제리는 비자 발급이 까다롭다. 초청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가는 목적을 밝혀야 하고 가볼 곳과 숙박지를 일일이 정해야 한다. 호텔과 같은 관광 인프라도 충분히 개발되어 있지 않고 대중 교통도 개발되어 있지 않다. 지중해, 바다를 굽어 보는 높은 산들, 로마 유적지, 사하라 사막, 오아시스 도시 등 볼거리가 많아도 소용 없다. 험지 여행가가 아니라면, 회사 일 때문이 파견된 것이 아니라면 기꺼이 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것은 비행기에서 내리기 전까지 이야기다.
일단 들어가서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만나게 되면 달라진다. 어깨를 펴고 목을 꼿꼿이 세운 건장한 남자들, 온몸을 간두라로 감싸고 있는 눈이 큰 여자들, 사막 저 멀리에서 걸어와 수줍게 웃는 소년들, 가슴에 손을 대며 잘 왔다고 맞아주는 평원의 사람들, 신이 너에게 평화를 내려 주실 것이라고 시를 읊어 주는 낙타 탄 사람들, 꿀이 흠뻑 들어간 과자와 박하 차를 함께 나누어 주는 사막 사람들… 한없이 너그럽고 관대한 사람들이다.
그들의 역사를 공부하고 나서 그들이 얼마나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들에게 평등이란 머리 속에 억지로 넣어야 하는 개념의 영역이 아니라 실천의 영역이었다. 누구도 우러러 보지 않았고 누구도 굴복시켜 존경을 강요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억압이란 낯선 단어였다. 남들이 자신들이 살고 있는 땅에 들어오는 것에 대해 너그러웠지만 자신들의 존엄성을 침해하면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럽인들이 고통스럽게 했지만 엄청난 희생을 치르며 물러나게 했다. 평등 그리고 권위에 대한 저항은 정체성의 일부였다.
자부심에 넘치고 당당한 사람들이었다. 쉽게 꺾을 수 없는 강한 자존심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따뜻했다. 파리에 유학하는 동안 프랑스인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에 배어 있었던 내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들이 보여주었던 인간적 모습들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다. 그들의 환대가 첫 방문 이후 열 번이 넘게 그들을 다시 보러 가게 했다. 나의 알제리 탐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자,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알제리에 대한 약간의 정보다.
아프리카 대륙 북부 지중해 연안에 위치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아랍 세계에서, 지중해 연안에서 가장 큰 나라다. 한국의 24배다. 한국으로부터 직선 거리 1,000㎞, 비행 시간 13시간 정도 걸린다.
정식 국호는 ‘알제리인민민주공화국’이고 종교 언어적으로 아랍 이슬람권에 속하고 인구 약 4,600만으로 우리 나라와 비슷하다.
“20세기 가장 잔혹한 식민 독립 전쟁”을 치르고 1962년 프랑스의 지배로부터 독립했다. 자력으로 독립을 성취한 국가 중 하나로 자부심이 대단히 강하다. 그들을 만날 때는 그 점을 특히 유념해야 한다.
프랑스의 지배로부터 독립한 후 사회주의 국가가 되어 북한과 가까웠다. 한국인은 여행할 수 없었던 적성 국가였다. 1990년에 한국과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 2004년 알제리 부테플리카 대통령이 우리나라를 방문했고, 2년 후 노무현 대통령이 알제리를 방문해 두 나라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가 맺었다. 특별한 외교 관계가 발전해 있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 기업의 진출이 활발하다.
알제리로 가는 비행기는 파리에서 갈아탄다. 알제로 출발하기 전 파리에서 며칠을 보냈다. 알제리에 간다고? 그 험한 곳에 가게 둘 수 없지. 프랑스인 친구들은 표정이 달라지면서 말을 멈추었다. 그래도 알제리는 왜? 의문을 거두지 않았다. 알제리를 잘 모르거나 아니면 잘못 알고 있거나 둘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왜 또 알제리를 가고 있는지 말하지 않았다. 파리보다 알제에서 더 안전하다고 느낀다. 질적으로 다른 만남을 가질 수 있다.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편견을 버리기는 쉽지 않다. 그들에게 알제리는 100년 넘게 지배했던 식민지였고, 자신들의 지배를 받았던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그 사실이 함축하고 있는 편견과 차별은 생략한다. 어쨌든 그들 스스로 생각을 바꾸기 전에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2004년 처음 알제리를 갔었다. 큰 기대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지도를 보면 아주 큰 나라라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그것을 실감하는 데 긴 시간이 걸렸다.
알제 공항은 낯설었다. 활주로도 잘 보이지 않는 붉은 땅 한가운데 선 비행기에서 내리니 짐 칸에서 꺼낸 캐리어들이 죽 늘어서 있었다. 자기 캐리어를 찾으라고 하더니 바닥에서 그대로 열게 하고 검사했다. 총을 들고 무장한 군인들이었다. 잠시 패닉에 빠졌다.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해안가 도로를 따라가며 만나는 도시 알제는 산을 배경으로 지중해를 바라보고 있었다. 뜨거운 햇살과 건조한 공기 속에 종려나무가 늘어선 도로… 후세인 데이, 무스타파, 히드라, 엘 비아르, 드라리아… 팻말에 적힌 지명들이 이국적 분위기를 흠뻑 느끼게 했다. 높은 곳에서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는 ‘순교자의 추모탑’, 신호등 없는 거리, 발까지 오는 통 원피스를 입은 여자들, 파리와 비슷한 건물이 늘어서 있는 중심가,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흰색 건물… 낯설지 않았지만 선뜻 마음이 가지 않았다.
도시는 어둡고 무겁고 우울했다. 사람들은 의기소침하고 침울해 보였다. 중앙 우체국 앞 바다를 바라보며 층층이 조성되어 있는 공원에도, 알제대학 앞 넓은 길에도 사람이 별로 없었다. 높낮이가 심한 지형에 구불구불 난 길들은 좁고 옹색해 보였다.
도시가 왜 이렇게 어둡게 느껴졌는지 알게 된 것은 현대사를 읽은 후였다. 10년 간의 격심한 내전이 진정되고 ‘국민적 화해’한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였다.
알제는 갈 때마다 달라졌다. 지금은 거의 다른 도시가 되었다. 건물이 늘어나고 밝아졌다. 해안을 따라 건설된 자동차 전용도로는 자동차로 넘치고 해변은 사람들로 넘친다. 미로처럼 얽힌 골목은 노는 아이들로 넘치고 곧게 난 도로는 젊은이들이 넘친다. 2만 명을 수용하는 거대한 모스크에 사람들이 모여 기도하는 도시, '밥 에주아르' 이공대 재학생 3만5천 명을 포함한 6만 명의 학생들이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도시 알제가 내뿜고 있는 공기는 싱싱한 역동력으로 넘친다. 도시 알제는 이미 오래 전부터 힘에 넘치는 도시였고 2024년 지금도 그렇다.